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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저 주는 것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이어야 한다.
마치 자신의 몸을 태워 불을 밝히는 촛불처럼, 희생이 전제되어야 비로소 참다운 사랑을 할 수 있다.
때로는 상처를 입고, 그 상처에 가슴을 후비는 고통을 견디고, 그 고통이 남긴 상흔에도 그리워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서도 늘 아쉬워해야 한다.
사랑은 나눌 수 없다.
단 한사람을 향한 신앙과도 같은 지고지순한 마음이다.
항상 보고 있어도 보고 싶어지는 마음이다.
종일 생각하고 보고 싶어 하고 무엇인가 더 해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때로는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이 혹여 집착으로 비추어질까 두려워하면서도 한순간도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영원하다.
어떤 사람은 이별을 통해 사랑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진실한 사랑이라면 삶이 이어지는 한 시간과 상관없이 영원하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해도, 서로의 삶이 이어지고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한 사랑은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
세상을 알쯤에야 자신의 사랑을 돌아보면, 진정으로 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 사랑이 그리 많지 않았음을 문득 깨닫게 된다.
사랑은 내가 주가 되는 개념이다.
사랑을 주고받는다는 것도 다른 사람의 호의를 사랑으로 느껴야 되는 것이다.
호의도 때로는 간섭이나 잔소리가 될 때도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그만큼 사랑은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이 나에게 호감으로 작용해야 얻어질 수 있는 마음의 소리인 것이다.
평소 “사랑한다.”라는 말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설레지만, 실상은 그 말이 얼마나 부질없는 말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랑이든 뭐든 받는다고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계산하게 된다.
자신의 입장이나 상황에 따라 사랑의 크기와 표현방식이나 형태조차 맞춰주기를 원하게 되는 것이다.
바라고 원하는 것을 받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게 화를 내게 되고 마음 아파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공짜라도 누군가로부터 받는 것은 마음의 부담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어쩌면 주는 것이 속 편하다.
분명한 것은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행복하다.
그것은 아마 태어나 엄마가 젖을 물리는 그 순간부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점차 성인이 되어 결혼하여 아이가 태어나면 상대적으로 받는 것에서 주는 것으로 그 추가 기운다.
자신의 이름에 누군가의 이름이 더해질수록 비로소 주는 사랑이 시작된다 할 것이다.
진정 사랑함으로써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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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과 나란히 서서
누군가와 나란히 서고 싶다.
마음을 나누고 도움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서로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이익에 따라 작은 잘못조차 용납하지 못하고 되돌아서 거침없이 욕했던 지난 시간에 대해 반성한다.
그것은 삶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정이란 소중함을 잊은 탓이다.
삶이 외로워질수록 사람이 그리워진다.
비록 싸우고 말하지 않아도 곁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그립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왠지 마음의 위로가 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
늙어갈수록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고, 서로의 작은 부대낌조차 오해로 자라 마음을 번잡하게 한다.
한창 때에는 이해하고 참고 넘어갈만한 일도 왠지 마음에 상처를 만들곤 한다.
누군가와 나란히 서는 것이 그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야 한다.
단지 견에 머무는 존재가 아닌 서로 동등한 존재로서 대접받는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생각이나 가치관도 비슷해야하고, 경제적인 능력이나 지적인 측면에서도 서로 닮아야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고통을 참아야 하고 속으로 울기도 하고, 믿음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나를 희생하지 않고는 결코 나란히 서기 어려울 것이다.
욕망이 담백할수록 아름답다고 한다.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욕망을 버리기도 쉽지 않다.
위기나 시련에 쉽게 굴복하거나 현실과 타협하려 하고, 작은 이익에 마음 흔들리기 예사다.
그만큼 욕망은 변하기 쉽고 완벽하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늘 함께하는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 또 그 상처가 자신에게로 돌아와 아파하게 되는 것이다.
한 사람만 바라보며 사랑도 시간적인 생각이나 가치의 변화에 따라 어느새 이해를 따지게 된다.
게다가 꺾이고 굽어지다 못해 옹이가 베기고 상처가 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도 쉽지 않다.
때로는 지키고 때로는 변해야 나란히 설 수 있음에도 쉽게 용서를 구하지 못한다.
마음이야 늘 내려놓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그렇기에 동행은 믿음과 배려가 기본이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사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앞으로 남은 나머지 인생을 누구와 어떻게 살아가야 좋을지 걱정이 많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마음으로 감사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누구인지 돌아보게 된다.
왜냐하면 이젠 새로운 인연보다 그동안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더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진정으로 함께 가야 할 사람이 아니겠는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자주 난다.
슬픈 드라마나 영화뿐만 아니라 어려운 남의 얘기를 들어도 그렇다.
정작 울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냉정해지고 별것도 아닌 일에 눈물을 주체하기 못한다.
아마 그것은 주어진 나머지 생이 앞으로 어떤 상황에 처할 것인지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는 탓이기도 할 것이다.
소중한 사람과 진정한 삶의 동반자로 나란히 서고 싶은 나만의 작은 소망일 것이다.
Apple | iPhone XS Max | Normal program | Pattern | 1/102sec | F/2.4 | 0.00 EV | 6.0mm | ISO-125 | Flash did not fire, auto mode | 2019:01:27 13:54:18
내가 친구라 여긴다고 해서 반드시 내가 그의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설 연휴가 시작되었다.
대다수가 명절이면 고향으로 가 성묘도 하고 일가친척들도 만나게 된다.
그 중에서도 빠질 수 없는 건 오랜만에 고향에서 만나는 고향 친구들과 재회일 것이다.
그저 그리움 하나로 만날 수 있는 동심의 친구들, 아마 그들이 진정한 의미의 마지막 친구가 아니었나 싶다.
어쩌면 그동안 만난 수많은 사람들 모두가 친구인지도 모른다.
특히 주변에서 조금이라도 알려진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친분을 만들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사회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려면 나를 지지해주는 우호적인 사람이 그 얼마나 필요한지 알기 때문이다.
친구라는 진정성을 따지는 것은 그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말이다.
국어사전에는 친구(親舊)란 오래 사귀어 온 사람이다.
따라서 친구는 반드시 동년배가 아니어도 마음이 맞으면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어떤 사람은 금방 만난 사람도 친구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단지 현 상황에 맞는 사람을 만난 것뿐이다.
진정한 친구란 오랜 시간 희노애락을 함께 겪고 나누어 온 사람인 것이다.
친구는 내가 원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마음이 맞아야 하고, 가급적 자주 만날 수 있어야 하고, 일상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서로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친구라 여긴다고 해서 반드시 내가 그의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친구를 대함에 있어 거짓이 없어야 한다.
말이나 행동 그 모든 것에 있어 서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그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해타산이나 여건에 따라 언행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친구란 이름을 가장한 그저 아는 사람일 뿐이다.
서로 간에 무엇을 받고 해주던지 질과 량을 계산하지 않아야 한다.
친구란 그저 존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친구의 어려운 일은 내 일처럼 하고, 좋은 일은 바라보는 사람이어야 한다.
도와줄 것과 도움을 받은 것을 생각하기보다는, 주어진 상황에 최상의 도움을 베푸는 사람이어야 한다.
친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말없이 다가와 묵묵히 손을 내미는 진정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
친구란 또 다른 나와 다를 바 없다.
작가가 글을 쓰듯 틀린 것은 고치고, 미진한 것은 보충하는 사람이다.
친구라는 이름을 이용하거나 악용하지 말고, 더욱 빛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한 순간의 기분이나 상황에 따르기보다는, 자기 일처럼 나서주던 고향 친구들의 진정한 우정이 그립고 그립다.
Apple | iPhone XS Max | Normal program | Pattern | 1/30sec | F/2.4 | 0.00 EV | 6.0mm | ISO-500 | Flash did not fire, auto mode | 2019:01:21 17:46:36